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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이의 온기
긴장했다. 떠나기 전부터 배가 아픈 것도 같았고, 안 좋은 소문이 귓가에 내내 맴돌았다. 캐리어는 온갖 잡다한 물건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이 모든 게 기우였단 생각이 든 건 자이푸르의 어느 작은 가게에서였다. 핑크빛 노을이 가만히 내려앉은 평온한 시골 마을 한 구석에 있던 짜이 가게. 그곳엔 발도, 목도, 손톱도 까만 인도사람들이 둘러앉아 캐러멜 빛 짜이를 마시고 있었다. 40대에 가까운, 그중에서도 젊은 축에 속하는 아저씨는 닳고 닳아 윤이 나는 주전자를 들었다 놨다 하며 짜이를 끓이고 있었다.

“짜이 한 잔이요”라고 말하곤 인도 사람들 틈에 끼어서 쭈뼛거렸다. 허기진 배 속으로 따뜻한 액체가 꿀렁꿀렁 들어갔다. 짜이가 쓰지 않고 달달해서 다행이었다. 절로 미소 짓게 하는 맛. 그때 한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몇 살이냐고, 어디 사냐고, 서울은 어떤 곳이냐고, 여기는 왜 왔냐고. 사람들이 돌아가며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를 당하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온갖 단어를 구사하며 말했던 것 같다.

그러고는 잠시 공백. 빈 컵에 짜이가 또다시 채워지자 질문이 이어졌다. 저녁은 먹었냐고, 여행 중에 아픈 곳은 없었냐고, 내일은 어디 갈 거냐고. 질문의 주제는 걱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인도 음식이 잘 맞는지, 자신의 아내가 음식은 정말 누구의 입맛에도 딱 맞게 잘하는데 함께 가서 먹지 않겠냐고. 우리는 그렇게 층층계단을 올라가듯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들의 투박한 손짓은 또 다른 사람을 불렀고, 그 사람은 뚜벅뚜벅 걸어와 친구가 되었다. “나마스테!” 두 손을 모으거나 눈을 맞추며 다가서면 험상궂은 표정을 짓던 사람도 언제 그랬냐는 듯 지긋한 미소를 지어준다. 그리고 짜이를 파는 작은 노점이나 가게에 들르면 그들과 부드러운 시간을 공유할 수 있다.

 

여행의 의외성
여행을 떠나기 전, 설렘은 곧 막연한 기대로 이어진다. 빛 한 줌 없는 자이살메르의 사막, 캄캄한 하늘은 온통 별빛으로 물들 거라 했다. 여행자들의 후기를 샅샅이 훑어봤고, 이 시각쯤이면 별이 우수수 쏟아져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벼도 실낱같이 반짝이는 별들만 띄엄띄엄 보였다. 그렇게 실망과 동시에 눈을 감았다. 이때 발가락 사이로 보드라운 모래의 감촉이 느껴졌다.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사막도시 자이살메르의 따뜻한 모래 위, 밤바람을 맞으며 오래도록 머물렀던 그 시간. 앞으론 세상의 모든 부드러운 촉감 속에서 사막의 기억을 반추해낼 수 있으리라.

인도 라자스탄의 네 도시를 다니면서 가장 눈여겨봐야 했던 것은 색이었다. 조드푸르의 블루, 자이살메르의 골드, 우다이푸르의 화이트, 그리고 자이푸르의 핑크빛을 숨은 색깔 찾기 하듯 유심히 살피며 다녔다. 영화 [김종욱 찾기]의 배경지였던 조드푸르의 빈티지한 골목은 마음에 꼭 들었다. 모퉁이에서 배우 공유 같은 운명의 남자라도 만날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골목을 거닐었다. 하지만 핑크 시티 자이푸르의 첫인상은 실망 그 자체였다. 좀 더 화사하고 예쁜 빛깔의 핑크가 아쉬웠다. 제대로 된 핑크빛을 보게 된 건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순식간에 어둠이 깔린 도시의 건물들이 오묘한 핑크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낮은 음계에 머물러 있는 듯 침착하고 정직한 핑크색이었다. 비록 사진으론 담을 수 없는 빛이었지만, 마음은 그 핑크빛에 물들어 설렜다. 인도에서는 사기를 당하고 바가지를 쓰고 기차가 연착하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여행길을 가로막기도 한다지만, 의외의 행운도 반드시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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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삶터 가까이에 사원이 있어 인도인들의 일상은 평온하다.

2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가트가 있는 호수나 강은 인도에서 중요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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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코끼리를 타고 올라야 진짜 여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암베르 성.

4 블루의 향연. 조드푸르 골목에서 마주치는 삶의 풍경은 더 진한 빛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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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드푸르 메헤랑가르 성 한편엔 햇볕 아래 여유로운 일상이 펼쳐진다.

6 인도에서 하루의 시작은 늘 달콤한 짜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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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카메라를 들이대면 늘 천진난만하게 웃어주는 인도 아이들.

8 라낙푸르 자인교 사원에서 만난 그녀는 순백의 배경 속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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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유적지를 지키는 관리인들. 근엄한 표정을 짓다가도 “나마스테!”라고 인사를 건네면 친근한 미소를 짓는다.

10 헤나 덕분에 인도를 조금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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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자이살메르 성안에는 골목골목 앤티크한 소품 가게가 많다.

12 푸른 점묘화 같았던 조드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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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시골 마을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멋진 포즈를 취한다.

14 건물마다 섬세한 조각이 장식된 메헤랑가르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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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진정 인도의 컬러를 만났다! 노점에서 파는 알록달록한 향신료들.

16 동이 틀 때 가장 아름다운 사막의 풍경. 밤새 무수한 별을 보지 못했던 아쉬움이 싹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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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인도의 성은 돌로 지어져 견고해 보인다. 단단한 돌에 새긴 조각들은 더욱 신비롭기만 하다.

18 블루시티에서 만난 작은 상점. 시간의 조밀함과 여유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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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창과 문의 곡선이 인상적이었던 자이살메르 성.

20 소와 릭샤가 거리를 점령하는 와중에 발견한 위풍당당한 하얀 말. 단연 눈에 띈다.

21 인도의 컬러를 완성시키는 화려한 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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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에이비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