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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잊혀지지 않을 일몰을 경험했다. 사방 광활한 밀림을 둘러싸고 하늘을 향해 우뚝 선 거대한 파고다에서 오랜 세월 동안 지고 떴어도 결코 지치지 않는 태양의 얼굴과 마주했을 때, 침착함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써 악물었던 악관절이 저절로 풀리기 시작했다. 바간에서의 하루는 3천 개의 파고다 속에서 신비스러운 역사와 함께 잊혀지지 않을 천 년의 감동으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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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간, 천년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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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전통적으로 칠기기술이 발달된 바간의 공예센터인 [바간하우스]의 칠기공예제품과 제품을 만드는 기술자들의 모습이다. 환하게 웃는 여인의 미소가 아름답다
3. 낭우마켓에서 과일을 파는 아낙네의 미소도 어찌 이리 아름답단 말인가.

 

양곤에서 바간으로 이동 하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1시간 소요) 워낙 도로사정이 좋지 않기 때문에 버스로 이동할 수는 있지만 상당한 고통을 장시간 견뎌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선은 국제선에서 1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 우리의 시골 대합실 정도의 규모로 비행기 시간이 되면 해당 버스를 타고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한다. 수화물도 수레에 싣고 비행기까지 가 직접 싣는다. 수화물이 걱정되기는 했지만 바간 공항(공식 명칭은 낭우 Nyaung U 공항)에 도착해 입국심사를 마치는 순간 바로 앞으로 가져다 주는 인공지능형 전수동(?) 수화물 수레 시스템에 감탄하고 말았다. 이곳이 바로 미얀마의 역사와 문화의 보고(寶庫)인 바간이다. 바간의 특징은 칠기기술이 발달돼 있다는데 있다. 11세기부터 대나무와 수지를 이용해 쟁반, 컵, 가구 등의 공예품을 만드는 기술이 발달돼 있어 바간 하우스Bagn House 같은 공예센터가 유명하다. 1970년대로 타임슬립 한 듯한 시골 정취가 무척 인상적인 바간. 이곳에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온 유적들이 있다는 흥분은 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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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모래 언덕의 탑, 쉐지곤 파고다Shwezigone Pago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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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통 인형극에 쓰이는 인형들이 오가는 관광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듯 하다.
2. 화려한 벽화가 예술인 구바욱지 사원의 전경

 

숙소에 짐을 풀고 편한 복장으로 나와 처음 간 곳이 낭우 마켓Nyaung U Market이다. 캄보디아나 라오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래시장으로 바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3천 개의 파고다가 있는 곳이다 보니 파는 물건도 사원에 입장할 때 입을 롱지를 판매하는 곳이 많았고 자외선 차단제이자 천연 에어컨 역할을 하는 타나카 나무를 파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아침 일찍 문을 열어 오후 3시면 문을 닫는데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매일 장을 볼 수밖에 없어 늘 시끌법적 한 시골 장터가 된다.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파고다의 천국인 바간. 시원하게 뚫려있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첫 번째 도착한 곳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으로 현지인들이 소원 성취를 위해 즐겨 찾는 쉐지곤 파고다Shwezigone Pagoda. 1059년 아노라타Anawrahta 왕에 의해 건축을 시작한 후 1085년 아노라타왕의 아들인 짠시타Kyanzittha왕에 의해 완성됐는데 전체가 금박으로 덮인 높이만 50m의 거대한 불탑이다. 부처님의 치사리(치아)와 결골사리(무릎)가 모셔져 있다고 전해진다. 쉐지곤 파고다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몬Mon 건축양식에서 버마 건축양식으로 바뀌는 시기에 만들어진 최초의 버마 건축 양식의 불탑이라는데 있다. 특히 탑의 금박이 흘러내리지 않고 그대로 붙어 있고 경내의 큰 북을 치면 반대편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고 아무리 비가 와도 경내에 물이 차지 않는 신기한 현상은 쉐다곤 파고다를 더욱 더 신비롭게 만들어 주고 있다. 쉐지곤 파고다를 정면으로 보면 계단 바로 앞에 고개를 들지 않고 파고다 전체를 보기 위해 만든 작은 웅덩이가 보인다. 기도하면서 파고다의 모습 전체를 보기 위해 만들었다는데 실제로 각도를 잘 맞춰 웅덩이를 바라보니 파고다 전체가 보인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아도 기도하는 마음의 깊이가 절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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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다의 천국 올드 바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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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얀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손꼽히고 있는 아난다사원의 불상
2. 천 년의 시간을 지켜온 전통적인 교통수단인 우마차. 시간만 허락한다면 우마차를 타고 바간을 천천히 돌아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과거의 현재를 잇는 마차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3.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이라는 뜻의 슐라마니 사원의 전경.

 

앞서 말했듯이 3천 개의 사원이 있는 바간의 모든 사원을 다루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여기저기 우뚝 서 있는 탑들을 보면 다 똑 같은 모양일 뿐이다. 길게 뻗어있는 바간의 도로를 오가는 우마차를 쉽게 볼 수 있다. 말을 끄는 사람을 포함해 3명까지 탈 수 있는 마차는 천 년의 시간 동안 변함없이 거슬러 온 교통수단이라 생각하니 탑승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취재만 아니었다면 우마차를 집어 타고 흥얼거리며 정처 없이 바간을 돌며 역사와 시간의 내음을 흠뻑 마시며 취하고 싶었다.

 

특히 황혼 무렵에 우마차를 타고 싶은 충동이 간절했지만 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솔직히 바간은 오로지 해질 무렵의 쉐산도 파고다를 가기 위해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이런 이유로 해가 질 때까지 몇몇 특징 있는 파고다를 돌기로 했다.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이 바로 1133년에 미얀마 남부를 지배하던 몬 왕조의 건축양식으로 만들어진 구바욱지 파고다. 파고다 내부에는 정말 화려한 벽화가 많았지만 사진 촬영을 할 수 없어 상세히 보여줄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이 바로 꼭대기 탑의 모습이 가장 화려한 아난다 사원Ananda Temple이다. 아난다사원은 미얀마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사원으로 꼽히고 있는데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바로 알아볼 수 있도록 탑신에 칠해 진 황금이 화려하게 빛이 난다. 53m의 높이로 동쪽을 향해 있으면 정사각형의 각 방향마다 18m의 돌출 현관을 만들어 출입문을 만들었는데 안으로 들어서면 석가의 일생을 표현한 부조가 벽면을 따라 이어져 있다. 밖으로 나와 대충 평평한 바닥에 앉아 사원을 바라보니 멀리서 볼 때는 황금빛으로 화려했지만 정작 가까이에서 보니 검은 색으로 변한 벽면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듯 하다. 검은 색과 황금색의 대비가 묘한 대립각을 세우는 듯 보인다. 슐라마니 사원Sulamani Temple으로 이동하자 가이드는 이곳이 특별한 곳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해줬다. “나라투 왕의 둘째 아들로 왕위에 오른 나라파티시투는 불교를 숭상해서 수없이 많은 사원을 세운 왕으로 어느 날 트유윈 산에 다녀오는 길에 빛을 내는 루비를 발견했습니다. 왕은 루비를 발견하게 된 것이 불심을 더욱 쌓으라는 부처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해 발견한 장소에 바로 슐라마니 사원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슐라마니란 바로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이라고 가이드가 마무리 귀띔을 해준다. 18세기에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가모니의 생애를 표현한 벽화가 잘 보존돼 있다. 가이드가 시계를 보더니 서둘러 장소를 옮기자는 신호를 보낸다. 해가 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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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역사와의 조우, 쉐산도 파고다에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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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산도 파고다 꼭대기에서 바라 본 바간의 전경. 우거진 숲 사이로 드문드문 고개를 내밀고 있는 3천 개의 사원들의 모습이 매우 신비스럽게 보인다.

 

쉐산도 파고다 Shewe San Daw Pagoda는 미얀마를 최초로 통일한 아노라타왕이 처음으로 세운 사원으로 알려져 있다. 쉐산도가 ‘황금의 불발’이라는 뜻으로 정적인 크메르를 퇴치하는데 큰 힘을 준 아노라타 왕에게 바고의 왕이 고마움의 표시로 부처의 불발 한 개를 보내왔고 이를 모시기 위해 건설되었다 한다. 막상 다가서니 급경사나 다름없는 계단에 다리가 절로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오로지 우측으로 난 철제 난간에 의지해 간신히 올라가 밑을 내려다 보니 눈이 아찔할 정도로 높다. 하지만 이미 올라온 수많은 관광객들은 아슬아슬한 난간에 그냥 앉아 해가 지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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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저 자세로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해가 질 때까지 저 꼬마 수도승은 수행을 하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보니 순간 우거진 밀림 사이로 우뚝 솟은 3천 개의 파고다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보는 듯 한 장관에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점점 주위가 붉게 물들어 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하며 일몰을 향해 모든 오감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순간 정적이 흐르고 시간이 멈추고 기도하듯 자연과 하나가 되고 있었다. 해질녘의 쉐산도 파고다는 천 년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이곳을 보지 않고 지나친다면 바간을 보지 못한 것이나 진배없다. 붉은 태양을 바라보는 곳은 붉게 물들어 눈부신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태양을 등진 곳은 어두운 실루엣에 잠겨 또 다른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쏟아내고 있었다.

 

사진을 촬영하는 것도 무언가를 얻어내려 하는 것도 일순간 부질없는 짓처럼 느껴져 그저 멍하니 그렇게 한동안 서 있었다.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면서 정신을 차리게 됐지만 일순간 두려운 생각이 떠 올랐다. 쉐산도 파고다를 오르는 사람들을 적절히 통제하지 않는다면 금새 훼손이 될 것이고 결국 이곳도 폐쇄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이왕 경제제제 조치도 풀고 관광산업의 물꼬를 틀기로 한 정부인 만큼 보존대책에도 큰 관심을 가져주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이미 주위는 암흑으로 깊게 깔렸지만 제 자리를 차지한 달이 은은한 달빛을 내리 쏘고 있는 모습도 가히 장관이었지만 정작 내려갈 길이 아뜩한 지라 조심스레 난간을 붙잡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아, 쉐산도 파고다 역시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벗어 논 신발을 한 눈에 발견한 것은 정말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면 벗어 놓은 신발들 틈에서 잃어버리는 일이 왕왕 있다 하니 값싸고 편한 신발을 신고 가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로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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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협조 / 베트남항공 02-757-8920 www.vietnamairlines.co.kr

원문 / 뚜르드몽드 (http://www.tourdemonde.com/) 1412.jpg